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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끈적끈적하게 더운 여름 날, 테이코 중학교의 체육관 바닥에는 여러 사람들이 녹아내린 것 마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농구공이 굴러다녔지만 그 누구도 정리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으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 체육관에 에어컨을 안 틀어주는 게 말이 되냐고오!!!! 안 그래도 이 빡센 훈련을 받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있던 아오미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조용한 체육관 안에 아오미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에 기대어 앉아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던 미도리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에어컨 수리가 밀려 기사님이 오시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한다고 했으니...”
그 말에 더 열불이 난 것인지 아오미네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농구공을 들어 반대편 농구골대를 향해 세게 던졌다. 그의 짜증난 심정과 달리 농구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깔끔하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아오미네는 농구공이 들어가든 말든 관심 없다는 듯 입고 있는 티셔츠의 밑자락을 잡아 올려 이마의 땀을 벅벅 닦았다.
“아니! 그러면 에어컨이 안 나오는 동안 연습을 쉬어야 하는 거 아냐? 솔직히 이 날씨에 연습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공식 연습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야. 그런데 이 더위에. 공식 연습도 아니고 추가연습을. 그것도 우리들만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뭐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아오미네?”
“뭐긴 뭐야! 연습말야, 연습!”
아오미네의 등 뒤에서 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오미네는 잔뜩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섰다. 그의 뒤에는 농구공을 들고 있는 아카시가 서있었다.
“흠.. 그러네. 아무리 시합이 얼마 안 남았다지만 이 날씨에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하는 건 확실히 별로일지도 모르겠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는데 체육관 말고 운동장에서 연습하도록 할까?”
아카시는 활짝 웃으며 아오미네에게 농구공을 던졌다. 공은 가볍게 던져졌지만 함께 던져진 말은 가볍지 않았다. 턱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바깥쪽을 바라보는 아카시의 모습을 보는 아오미네의 등에 식은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카시의 등 뒤에서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카시가 뿜어내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원망의 눈초리로 인해 아오미네의 체온이 10도 정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 당황한 재빠르게 아카시가 보고 있는 문 앞을 몸으로 가로 막고 어색하게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런 게 아니라, 아카시!!! 이 날씨에 연습을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 그렇지. 연습을 할 수도 있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이런 날씨에 에어컨이 고장 났으면 휴대용 냉풍기든 선풍기든 뭐라도 갖다 놔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야! 저기 봐! 얼마나 더웠으면 테츠도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 있잖아!”
아오미네는 척하니 구석에 누워있는 쿠로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구석에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던 무라사키바라는 물통을 내려놓으며 하품을 했다.
“그치만 쿠로칭은 에어컨이 있을 때도 저랬는걸―”
무라사키바라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아오미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긴, 체력 약한 쿠로코가 연습 중 지쳐 쓰러진 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긴 했다. 아오미네는 입을 다문 채 다른 건수가 없을까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구석에 엎어져 있던 쿠로코에게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씀들 하시는 겁니까. 전 한 번도 쓰러진 적 없어요.”
어느새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은 쿠로코는 아오미네와 무라사키바라를 째려보며 말했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에 아오미네와 무라사키바라는 말없이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쿠로코가 뭐라고 한마디 더 꺼내려는 순간 거의 슬라임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던 키세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오미넷치 포기해요... 성질 내봤자 더 더워지기만 함다.”
맞는 말이었다. 키세의 말에 다들 제각각 편한 자리를 찾아 몸을 뉘이고 다시금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덥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올라오는 짜증을 가라앉히고 있던 와중, 키세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모두를 향해 말했다.
“아. 좋은 생각이 났슴다. 우리 내기 할래요?”
“내기요?”
무슨 내기냐고 묻듯 쿠로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물음에 모든 이의 시선이 키세에게 집중되었다. 키세는 수상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사오는검다! 이 더운 날씨에! 모든 걸 태워버릴 것 같은 저 햇빛을 뚫고 편의점에 가서! 자기 돈으로! 여기 있는 모두의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거죠! 이긴 사람은 편하게 여기서 쉬고 있다가 패배자가 사온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구요. 괜찮을 것 같지 않슴까?”
키세는 당당하게 가슴을 쫙 피며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해낸 자신이 대견했는지 키세의 양 볼은 조금 발갛게 물들었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키세를 쳐다 보고 있던 미도리마는 안경을 고쳐 쓰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흥, 그런 바보 같은 짓 누가-”
“그거 재밌겠네. 그럼 다 같이 한번 해볼까?”
“아카시!???”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말을 가로막으며 키세를 향해 말했다. 그의 행동에 당황한 미도리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카시를 쳐다보았다. 아카시는 괜찮지 않냐 는 듯 미도리마를 향해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키세의 옆으로 가 섰다.
“결국 이기면 되는거네- 나도 좋구-”
“헤. 키세 너, 쓸모 있는 생각을 할 때도 있잖아?”
“그럼 빨리합시다. 미도리마군도 빨리 이쪽으로 와요.”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 서서 가위 바위 보를 할 준비를 마친 동료들을 보며 미도리마는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이 팀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란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모든 일에 인사를 다하는 그가 운으로 승부를 보는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에서 질 리가 없었다. 손해 볼 일도 없을 테니 이미 하는 것으로 정해진 이상 얌전히 어울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단 판단을 한 그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하...어쩔 수 없나.”
키세는 비어있던 자리에 미도리마가 선 것을 확인하곤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슴다! 늦게 내는 거 없어요! 다들 준비하시고..”
둥글게 모여 선 그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등 뒤에 숨겨져 있는 상대방의 손이 무엇을 낼지 예측하느라 눈이 쉴 새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긴장으로 인해 모두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려 바닥에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가위바위보 구호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파피루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노란 줄무늬 옷을 졸업하고 교복을 입은 몬스터 키드가 서있었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자신을 부르는 모습에 화답하듯 파피루스는 크게 숨을 들이 마쉬고는 전력을 다해 소리를 내질렀다.
“오!!!!! 이제는 커다래진 내 친구!!!! 무슨 일이야?”
“비이이이익!!!! 뉴우으으으으!!!!! 스으으으으!!!!!”
파피루스의 대답을 들은 것인지 몬스터 키드는 파피루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주변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파피루스는 마치 투우를 하는 황소같이 달려오는 몬스터 키드의 기세에도 놀라지 않고 익숙한 듯이 웃으며 양팔 벌려 자신의 친구를 맞이했다. 평소라면 그런 파피루스의 몸에 몸통 박치기를 하며 달려들었을 몬스터 키드였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파피루스의 바로 앞에 얌전히 멈춰 서더니 가쁜 숨을 골랐다. 그 모습에 파피루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인지 몬스터 키드는 깊게 숨을 내뱉더니 몸을 숙여달라는 듯 파피루스에게 고갯짓을 했다. 파피루스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다급한 몬스터키드의 고갯짓에 자연스럽게 허리를 약간 숙였다. 몬스터 키드는 다급하게 파피루스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한참을 소곤소곤 속닥거렸다.
“녜옉!!!??? 인간이!!??”
몬스터키드의 말에 파피루스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말이 끝날 때 즈음엔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채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몬스터 키드가 들고 온 소식은 다름 아닌 프리스크가 같은 학교 친구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여기까진 별 특별한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멀다하고 여러 사람에게 고백을 받고 있는 프리스크였다. 물론 처음 고백을 받았을 때는 고백 받았다는 얘길 듣고 놀라긴 했지만, 이 후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어 이제는 익숙해진 터라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바로, 그 누가 고백해도 곤란한 듯 웃으며 거절하던 그 프리스크가, 마음은 고맙지만 받아줄 수 없다며 수많은 고백을 거절해온 그 프리스크가, 이번에 고백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는 사실이었다. 흥분한 몬스터키드가 앞에서 소란스럽게 이야기하며 파피루스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지만 파피루스의 귀에 그의 목소리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파피루스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따끔, 가슴이 아팠다. 가시라도 박힌 것일까? 원인 모를 통증에 파피루스는 가슴께를 손으로 더듬거렸다. 손 끝에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래, 파피?”
“으..으응? 아..아니.. 그냥 이런 일은 처음일 인간이 걱정 돼서! 물론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을 닮아 COOOOOOL한 인간이니 별일 없겠지만!”
파피루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색한 그의 웃음에 몬스터키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심스럽다는 듯 파피루스를 향해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요리조리 흩어보는 몬스터키드의 시선에 긴장한 파피루스는 곤란한 듯 눈을 굴렸다. 그의 이마에 삐질 삐질 땀이 흘러내릴 것 같을 때 쯤 몬스터키드는 얼굴을 뒤로 빼곤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흐으음... 그러면 이렇게 할까?”
몬스터키드는 좋은 생각을 떠올린 듯 씩 웃으며 파피루스에게 속삭였다. 파피루스는 왕방울 만해진 눈으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한 거니까 ……하러 가면 되는 거겠지.”
“녝!! 그렇구나!!! 역시 이 몸의 친구!!!”
파피루스는 몬스터키드의 말에 감동한 듯 눈을 빛냈다. 파피루스의 순진무구한 미소를 본 몬스터키드가 고개를 돌려 씩하고 웃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어슴푸른 달빛이 창문을 적시기 시작할 때, 샌즈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조사해도 자료가 부족했다. 이러 저런 가설들을 세워보고 실험해보았지만 그가 원하는 결과를 손에 얻을 수 없었다. 샌즈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버리곤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모든 시야를 잠식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의지’.
그것이 사라졌다고 들은 지 벌써 일 년이었다. 아이에게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아이가 자신을 기만하려 하는 줄 알았다. 남들을 가지고 놀다 못해 자신마저 농락하려 드는 그 태도에 분노해 하마터면 그날 피를 볼 뻔 했다. 그러나 샌즈가 무슨 행동을 해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아이의 태도에 샌즈는 끓어올랐던 화를 간신히 가라앉히고 냉정히 상황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아이가 말한 것이 사실이었는지 아이에게서 느껴지던 이상한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있듯 느껴지던 시간선의 이상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하는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날부터 샌즈는 의지와 관련된 연구에 착수했다. 머나먼 옛날 지하에서 인간의 의지를 연구했던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쓸어와 자신의 집으로 옮겨놓고 무언가 놓친 것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크나 큰 의지가 사라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 갈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샌즈는 깨어나면 강박적으로 날짜를 확인하곤 했다. 샌즈는 소녀에게 의지가 다시 되돌아 오는 순간 다시금 시간선이 되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이 없어진 채로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 끔찍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연구에 몰두했다. 안타깝게도 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가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샌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겸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한 샌즈는 기대어 앉아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한참 늦은 밤인데도 머리 위에 떠있는 별들 덕분인지 사방이 어둡지 않았다. 즈리밟히는 잔디의 푹신함을 느끼며 그는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언제 또 느낄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상황을 그는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이 시간에 보여선 안 될 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정확히 확인한 샌즈는 소리를 죽여 그 이의 뒤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