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대운동회 청흑 배포본 이었습니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꼭두새벽, 깜빡거리는 가로등 밑에 한 소년이 서있었다. 빨개진 코끝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밖에 서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듯 했다. 그는 저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발견하곤 그를 향해 다가갔다.
“늦었네요, 아오미네군.”
“이런 꼭두새벽부터 불러내니까 그렇지! 넌 잠도 없냐!”
소년의 말에 화가 난 것인지 아오미네는 소년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이리저리로 흔들어댔다. 그가 하는 대로 힘을 빼고 고개를 이리저리 조금씩 흔들던 쿠로코는 자신의 머리 위에 얹어진 아오미네의 손을 양손으로 꼭 붙잡았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웃으면서 말하는 쿠로코의 모습에 괜히 뾰로통해진 아오미네는 입술을 삐죽거리고는 쿠로코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아오미네는 아까부터 참고 있었던 하품을 한 번 크게 하고는 눈가에 찔끔 나온 눈물을 닦아냈다. 그렇다. 이래저래 불만을 표하면서도 결국 쿠로코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오는 게 바로 아오미네였다.
“그래서. 이번엔 또 왜 불러낸 거야?”
“새해맞이 신사참배 같이 가자고요.”
그의 말에 아오미네의 얼굴이 마치 구겨진 신문지처럼 구깃구깃 해졌다. 혼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며 괴로워하던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양 어깨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테츠 너어! 내가 그런 거 귀찮아하는 거 알잖아!”
정말로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본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올려다보다 힘없이 눈을 내리 깔았다. 그는 아오미네가 어떤 모습에 약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쿠로코는 아래를 쳐다 본 채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알긴 하지만 아오미네군이랑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싫다면 저 혼자 갈게요.”
쿠로코의 행동과 혼자 가겠다는 말에 크게 당황한 아오미네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쿠로코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투정을 좀 부려본 것이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아오미네는 쿠로코와 시선을 맞춰보려 고개를 숙여 이리 저리 흩어보았지만 끝끝내 시선을 맞춰주지 않는 쿠로코의 모습을 보곤 멋쩍게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 이거지. 가자.”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손을 잡고 신사를 향해 걸어갔다. 갑작스럽게 잡힌 손에 놀란 쿠로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따라갔다. 아오미네가 너무 성큼성큼 걸어서일까, 쿠로코는 거의 뛰다시피 하며 그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도중 갑자기 아오미네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헉! 으앗!? 미안해, 테츠!!”
아오미네는 화들짝 놀라며 꼭 붙잡고 있던 쿠로코의 손을 놓았다. 아무래도 무의식중에 그의 손을 잡았던 것 같았다. 얼굴이 새빨개져선 어찌할 줄 모르는 아오미네의 모습을 바라보던 쿠로코는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왜요, 따뜻하고 좋은데요. 그리고 우리 사귀는 사이인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아오미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는 작지만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아오미네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흘긋, 옆을 쳐다 보자 빨갛게 달아오른 쿠로코의 귀가 보였다. 추워서 그런 건지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고 한참을 걸어 신사 앞에 다다랐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신사에는 새해맞이 참배를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신사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둘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밀쳐져 잡고 있던 손을 놓쳐버렸다. 아오미네가 다시금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쿠로코가 사람들 사이로 휩쓸려 들어간 후였다. 쿠로코는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보이는 아오미네를 향해 돌아가려 했지만 많은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아오미네가 자신을 찾기 어려울 텐데 라는 걱정을 하며 쿠로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렸다.
“테츠!”
아오미네는 사람들을 뚫고 정확히 쿠로코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인파 속에 휩쓸려가는 쿠로코의 팔을 빠르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이리 저리 치여 정신을 못 차리는 쿠로코를 끌고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아오미네군은 키가 커서 좋겠네요. 멀리서도 보이더군요. 찾기 편합니다.”
숨을 좀 고르던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아오미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테츠 정도면 괜찮지 않나. 너도 찾기 어렵지 않던데. 바로 찾았고.”
“그런 말은 살면서 처음 들어보네요.”
존재감이 옅어 항상 찾기 힘들었다는 말만 들어 왔던 쿠로코였다. 그런 자신을 찾아내 주는 사람이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단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얼른 참배하고 소원 빌고 돌아갈까요? 여기에 오래 있다간 깔려 죽겠습니다.”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눈을 고이 접어 웃는 쿠로코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오미네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쿠로코를 따라 세전 앞으로 걸어갔다. 딸그랑, 동전 던지는 소리가 났다. 쿠로코는 동전을 던지자마자 소원을 빌기 시작했는지 두 손을 꼭 모은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아오미네는 넋을 놓고 쿠로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래를 향하고 있는 기다란 하늘색 속눈썹이 그의 모습을 더욱 빛나 보이게 했다. 자신과 다르게 온 몸의 색소가 옅어 하얗게 보이는 사람. 잘못 건들이면 부셔져 버리는 게 아닐까.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설탕 과자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달콤하고 하얗게 예쁘지만 쉽게 부셔져 버리는 과자. 하지만 쿠로코의 외면이 설탕 과자와 닮았을지라도 내면은 정반대라는 걸 아오미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쿠로코에게 끌리는 것일까. 정처 없이 떠돌던 그의 마음은 그가 쿠로코에 대한 감정을 깨달은 순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아오미네가 한참을 넋을 놓고 쿠로코를 쳐다보던 중, 쿠로코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그것을 본 아오미네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 열심히 소원을 빌고 있는 척을 하였다.
“아오미네군, 무슨 소원 빌었습니까?”
“아니 뭐 그냥.. 몰라. 비밀이야. 원래 소원은 말하는 거 아니랬어.”
아오미네가 적당히 소원을 빈 후 눈을 뜨자 아오미네가 눈 앞에 바로 쿠로코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던 쿠로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오미네에게 물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소원이 뭐냐고 묻는 쿠로코의 모습에 아오미네는 어찌 대답할까 고민하다 대충 얼버무려버렸다. 네가 빈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 날에도 내가 네 옆에 있을 수 있기를, 네가 날 찾아주길 빌었단 말은 입이 찢어져도 말 할 수 없었다.
“그러는 테츠, 넌 무슨 소원 빌었냐.”
“비밀입니다. 소원은 말하는 게 아니라면서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아오미네는 새침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쿠로코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오미네가 흡사 쿠로코를 갈취하는 불량배처럼 보였지만 쿠로코는 익숙한 듯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까 아오미네군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아오미네는 입을 삐죽 내밀고 궁시렁 거렸다. 대충 둘러댄 말이 이렇게 되돌아 올 줄은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쿠로코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올려 아오미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로 특별한 소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잘 지내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쿠로코가 빈 소원은 지금처럼 아오미네군의 옆에 항상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 되기를, 또한 항상 아오미네가 자신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다. 쿠로코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아오미네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쿠로코에게 보냈지만 곧 포기하곤 쿠로코의 손을 다시 잡았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고 신사 밖을 향했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다른 듯 같은 소원을 모두 들은 해님만이 두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듯 두 사람을 향해 따스한 햇볕을 내리쬐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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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마무리가 안 되어서 급하게 쓴 배포지입니다 8ㅁ8 3월에 열리는 쿠농 통합온 때는 이번에 마감 못한 신간 2권 꼭 마감해서 들고 갈게요 흑흑..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고 올 한해 청흑 가득한 한해가 되길 바라요!!
written by. 치즈하나(@cheese_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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