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한 거리가 있었다. 판매대에 잔뜩 쌓여 있는 비단을 홍보하는 이, 알록달록 화려한 장식구를 파는 이, 값을 흥정하고 있는 이들 등 많은 사람들의 섞여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한 아이가 그 복잡한 시장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하늘색의 머리결에 같은 색의 눈동자를 한 아이. 그 아이의 머리에는 늑대의 귀가 쫑긋 서 있었다. 하얗고 가는 발목에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하고 녹슨 족쇄가 채워 져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족쇄를 찬 이들, 수갑을 찬 이들, 철창에 갇혀 있는 이들이 그와 똑같이 조용히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시끌 벅적한 거리에서 그 주변에만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유난히 하얀 그 아이의 모습이 그 풍경에 이질적으로 녹아 들어갔다. 흔치 않은 광경에 길가의 사람들이 그 아이를 흘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아이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볼 뿐.

그저 팔려 갈 뿐인 삶이 지긋지긋했다. 그렇지만 딱히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망 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이 삶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는 단지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이가 그의 주인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평소와 같은 사람들, 평소와 같은 상황. 변하는 건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미줄에 걸린 듯 더욱 더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될 뿐.

그러니 그 날도 평소와 똑같은 날이 되었어야 했다.




“이 느려 터진 것들!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고!”

저 멀리서 들려 오는 소리가 복도를 걷고 있던 아오미네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새로운 노예들을 데려 온 것일까. 정말인지 이 집안은 쓸데 없이 사람을 늘리는고만이라 생각하며 아오미네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렬로 들어가는 노예들의 무리를 계속 눈으로 흩던 그의 눈이 무엇인가 발견한 듯 커졌다.

‘…늑대?’

사람들 무리에서 그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늑대의 귀였다. 드문 일이었다. 늑대의 아이가 노예로 들어오다니. 부모라도 잃은 것인 걸까. 아오미네는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다 이 향은..’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를 찌르는 향이 아오미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오미네는 그 향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쿠로코의 손목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쿠로코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이를 커진 눈으로 쳐다봤다. 쿠로코는 그자의 머리에 달려 있는 자신의 귀와 비슷한 귀를 보곤 곧 그가 누군지 대충 눈치 챘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분명 쿠로코가 팔려 온 집안은 그 일대에서 의술로 명망 높은 늑대 수인의 집안이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 이가 정확히 누구인진 모르더라도, 그의 귀와 허리춤에 차고 있는 화려한 장식구를 보건대 그 집안의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름이?”

머리 위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에 쿠로코의 눈이 다시금 커졌다. 처음 들어 보는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쿠로코는 입술만 달싹였다.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을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물어 오다니. 평소 존재감이 옅어 노예 관리자마저 순서를 넘겨 버리기 일수였던 그의 존재를 눈치 채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노예의 이름 따위를 알고 싶어 하는 이는 지금까지 없었다. 사실 자신조차 잘 기억 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런 자신의 이름을 궁금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쿠로코..테츠야 입니다.”

간신히 자신의 이름을 떠올린 쿠로코는 조용히 읊조렸다. 오랜만에 입에 담는 자신의 이름이 낯설었다. 쿠로코는 흘깃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는 그의 모양새가 퍽이나 잘생겨서 쿠로코는 순간 넋을 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흠, 그래. 테츠.”

굵직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쿠로코가 다시금 눈을 내리깔았다. 조용히 그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 보던 쿠로코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듯 조금 커진 눈으로 아오미네를 쳐다보았다.

“….테츠요?”

“응. 테츠. 테츠야라고 부르기엔 너무 기니까.”

쿠로코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 아오미네는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손목을 잡아 끌어 노예들을 관리하고 있는 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예상치 못한 아오미네의 움직임에 쿠로코는 발이 꼬여 넘어질 뻔 했으나 어찌어찌 위기를 넘기고 그를 종종 걸음으로 쫓아갔다. 다른 노예들을 쳐다보고 있던 관리인의 눈과 쿠로코의 눈이 마주쳤다. 매서운 관리인의 눈에 겁을 먹은 쿠로코의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어이, 이 녀석. 내 담당으로 해 줘.”

아오미네의 말에 관리인의 얼굴에 곤란함이 피어났다. 눈을 데구륵 구르던 그는 어렵사리 입을 땠다.

“하지만 그 아이는 당주님께서..”

“됐고. 괜찮지?”

관리인의 말을 한 번에 막아선 그는 관리인을 날 선 눈빛으로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자기 말대로 해주지 않으면 어찌 될지 모른다는 듯한 그의 표정에 관리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예, 예. 나리가 원하시는 대로 하죠.”

아오미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관리인은 재빠르게 말을 바꾸며 미소 지었다. 망나니라고 소문난 이 집의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어찌 될지 그도 모르는 일이었다. 차라리 나중에 당주님께 혼나는 게 백배는 낫지 라고 생각하며 관리인은 손에 들고 있는 메모장에 재빠르게 ‘늑대 수인 아이, 아오미네님 담당’이라고 적어 내렸다. 그것을 말없이 쳐다보던 아오미네는 곧 쿠로코의 손을 다시금 잡아 끌었다.

“자, 가자. 테츠.”

“네, 네? …네.”

말을 더듬거리던 쿠로코는 맥없이 아오미네의 손에 이끌려갔다. 쿠로코는 이상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며 아오미네의 뒤를 말없이 쫓았다. 관리인은 긴 복도 너머로 멀어져 가는 쿠로코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다 저 아이는 저런 사람 눈에 띄게 되었는지 라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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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약간 오리엔탈풍? 그런 느낌의 나라 배경입니다!
머나먼 옛날....큼님이 저에게 주신 리퀘가 있는데요...그걸 지금이야 써오고있습니다..(죄송합니다 큼님.....)
갑자기 청흑 꿈을 풀스토리로 꾸게 되어서!!! 이건 대박이야!!! 큼님이 주신 설정까지 집어넣으면 되겠다!!!하고 막 집어넣어 글을 쓰게 되었네요!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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