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능하면 BGM 재생해주세요.


* 사쿠라 사망소재

* 사스케와 사쿠라가 결혼하긴 했지만 사라다를 임신하진 않았고, 사스케와 사쿠라가 같이 여행을 간 적도 없다는 설정입니다.

* 원작과 다른 설정이 많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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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죽었다.



사인은 과다출혈.

배에 수리검이 박힌 채 발견되었다.

자살이었다.



가장 먼저 사쿠라를 발견한 것은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사스케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사스케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의아함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사스케를 덮쳐오는 냉기와 쇠냄새.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스케는 한동안 멍하니 문앞에 서있었다. 그러다 늦어도 지금쯤이면 나타났었어야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곤 집안으로 뛰쳐들어가며 외쳤다.

"사쿠라!"

부엌, 거실, 화장실 그 어디에도 사쿠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사스케는 침실 문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심호흡을 내쉈다. 문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사스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인기척을 지운 실력자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스케는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서서히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방안을 확인한 순간, 사스케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붉다.

붉디 붉은. 아니 붉다 못해 검은. 검디 검은 색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것들이 사쿠라를 좀먹고 있었다. 

강렬한 색채에 사스케의 머릿속이 침식되어가는 것 같았다. 

검붉은 액체. 쓰러져있는 사람. 어릴적 봤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그것과. 같은. 그때와 똑같은. 그 색채.

사스케는 떨리는 손을 뻗어 쓰러져있는 사쿠라를 안아들었다. 사쿠라의 몸은 이미 차디찬 상태였다. 사스케는 사쿠라를 안아든 채로 정신없이 병원을 향해 뛰쳐나갔다.




사쿠라의 배에는 여러번 수리검에 내리 찍힌 흔적이 남아있었다. 부검을 한 의사는 조금 더 일찍 발견했으면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했다.

"왜 하필 그날이 휴일이어서.."

그 말을 들은 나루토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옆에 서있던 이노는 조용히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이노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사이도 주변이들과 같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영안실로 달려온 사람들의 반응들은 전부 비슷했다. 처음엔 사쿠라가 그럴리 없다며 장난은 그만치라며 먼저 와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그 후 관안에 얌전히 누워있는 사쿠라를 보고나서도 그럴리 없다고, 네가 자살할리가 없지 않냐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다 곧 눈물을 흘리며 왜 그랬냐고 당사자에게 닿지 않을 질문들을 해댔다.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달래주다, 결국 같이 울고, 다른 사람이 또 오고, 울고, 달래고, 울고, 달래고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쿠라를 위해 울어주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사스케의 눈에선 눈물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사스케를 향해 몇몇 사람들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고, 너만큼은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냐며 울부짖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스케의 멱살을 잡기도했다. 그 사람을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말리는 와중에도 사스케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사스케는 위로의 말을 건내는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채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카시나 나루토가 사스케를 위로해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였지만 사스케는 모든 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처럼 행동할 뿐이었다.나루토와 카카시, 이노 등 사쿠라의 친구들의 도움 하에 사쿠라의 장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사쿠라의 장례가 끝난 후 사쿠라는 마을의 외곽쪽, 한 작은 나무 옆에 묻혀졌다.








사쿠라를 묻고 한달정도 지났을즈음, 사쿠라의 묘 옆에 

새하얀 

동백꽃이 

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쿠라의 묘 옆에 있던 나무는 지금껏 꽃을 피운적이 없는 나무였으니까. 하얀 눈 위에 피어 있는 흰 동백꽃은 소름끼칠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모두 사쿠라의 혼이 피운 꽃일꺼라며 수군거렸다. 그 소문을 사스케가 듣지 못한 것은 아니나 애당초 사스케는 그런 초현실적인 것들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스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단 한문장으로 모든 소문들을 뭉그뜨렸다.

사쿠라가 죽은 후, 사스케는 여행을 떠나는 것을 그만뒀다. 대신 매일 사쿠라의 묘를 찾아갔다. 살아있을 적 사쿠라를 잘 챙겨주지 못한것에 대한 속죄라도 하듯이.

"사스케."

"...이노인가."

묘비에 적힌 사쿠라의 이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사스케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거기엔 이노가 서있었다. 이노는 살짝 웃으며 작게 손인사를 하곤 사쿠라의 묘비를 향해 걸어갔다. 묘비에 다다르자 이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아 묘비 위에 쌓인 눈을 털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사스케는 아무말 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듯 사스케를 쳐다봤다 그만뒀다 하며 눈을 굴리던 이노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쿠라를...사랑했니?"

"....."

사스케는 말없이 시선을 묘지쪽으로 돌렸다. 이노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그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너..백동백의 꽃말이 뭔 지 알아?"

"...?"

"이거, 빌려줄테니까 집에 가서 찾아봐."

그렇게 말하며 이노가 사스케에게 내민 것은 꽃 도감이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스케의 손에 책을 건내주었다. 꼭 읽어봐야한다고 당부를 하며 이노는 멀뚱히 서있는 사스케를 뒤로하고 마을을 향했다. 사스케는 그녀를 쳐다보다 곧 묘비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에 밤의 치마자락이 넘실거리고 달빛이 그 위를 감싸안을 때 쯔음 사스케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들어온 사스케는 이노가 빌려준 책을 아무렇게나 내팽겨치고 침대로 가 누웠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묘지에 있는 동안 몇번이고 책을 펼쳐보려 했지만 내키지 않아 그만뒀었다. 이런 책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별로 알고싶진 않았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고싶지 않았다. 더이상 그녀와 관련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스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이 물먹은 솜처럼 몸이 축 쳐졌다.




꿈을 꾸었다.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어둠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간 미칠것 같아서, 무작정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고 걷고 걸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슬슬 꿈에서 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어차피 따로 갈만한 곳도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빛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정도 빛이 나는 곳에 가까워졌을 때 그곳에 누군가 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건 분명...

익숙한 모습에 걸음이 빨라졌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사라질것 같아서. 그대로 놓쳐버릴것 같아서. 빠르게 걷다못해 뛰기 시작했다.

간신히 다다른 그 곳에는 분홍 머리의 여인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며 서있었다.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려했지만 여인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눈물 가득한 눈으로 시선을 맞춰왔다.

달디단 애정만을 담고있던 눈에 쓰디쓴 원망을 담고 있었다.

싱그럽다고 생각했던 녹빛 눈은 말라죽어가는 나무마냥 거무죽죽한 빛을 띄고 있었다.

한걸음 다가가면 여인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다가가려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꿈에서 헤어나왔다.

누워있던 이불이 축축했다.

뭔가가 잘못됐다.

사스케의 머리속에는 딱 한가지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뭔가가. 잘못됐다. 무언가가. 잘못 되어가고있다.


사스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겁지겁 아까 들고왔던 책을 찾았다. 들고왔을 때 아무렇게나 내팽겨쳐뒀던 탓인지 책은 바닥에 펼쳐져 엎어진채로 놓여져 있었다. 그는 펼쳐진 책을 그대로 들어올렸다. 마치 그가 책을 펼쳐보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펼쳐져있는 책의 한 페이지에는 하얀 동백이, 옆의 페이지에는 붉은 동백이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 써있는 백동백의 꽃말은...



당신은 나의 사랑을 경멸한다.



책에 쓰여진 꽃말을 읽은 사스케는 그대로 책을 집어 던지고 문을 부술듯이 열어재끼며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건 그가 원한 상황이 아니었다. 

사스케가 정신없이 뛰어간 곳은 사쿠라의 묘지였다. 그는 이제껏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묘 옆에 피어있는 하얀 동백꽃을 향해 다가갔다. 

사스케는 수리검을 꺼내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그리고는 하이얀 꽃잎을 붉그죽죽한 피로 물들여갔다. 

꽃잎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새빨간 빛으로 변색되어갔다.

붉게 물들어가는 꽃잎들을 보며 사스케는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아니다. 아니야, 사쿠라. 그렇지 않다.

나는 너의 사랑을 경멸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발...

날 그렇게 보지 말아줘.

날 용서해줘.

날 사랑해줘.

제발. 제발 사쿠라.

네가 다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떠났다.

상처 입히는게 나라는것도 모른채.

내가 떠나서 더 상처입을 거라는 것도 모른채.

내가 잘못했다. 전부 잘못했다.

그러니 제발 날 용서해줘.


사스케는 닿지 않을 사과의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손목을 또 한번 그었다. 모든 꽃송이가 붉은 빛을 띌 때 쯤, 그는 하던 행동을 그만두고 사쿠라의 묘를 향해 걸어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쿠라. 적동백의 꽃말은 뭔지 아는가."

지금껏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그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물기 가득한 목소리는 그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고 꺽꺽 거리는 소리만 냈다. 사스케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팔을 들어 사쿠라의 묘를 쓰다듬었다. 천천히. 정말로 사랑스럽다는듯. 그녀의 머리조차 쓰다듬어준 적 없었던 사스케는 그녀의 묘를 쓰다듬고 있었다.


"붉은 동백의 꽃말은...그대를 그 누구보다 사랑합니다...이다."

그래. 사쿠라. 나는 너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다.

심지어 너의 부모님보다도 널 사랑하고있다.

네가 나에게 하얀 동백을 던진다 하여도, 너에겐 붉은 동백을 들려줄 테니.

그를 위해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바칠테니.

그러니 제발. 이렇게 부탁할테니.


사쿠라. 너마저 날 두고 가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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