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타카오군
좋은 생각이 났어!]
한참 연습에 열중하다 잠깐 쉬는 시간,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한 쿠로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그와 쿠로코는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관계랄까. 좋은 생각이라니? 그와 무엇인가를 같이 하기로 한 적이라도 있었나?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대체 무엇에 대한 좋은 생각이란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옅은 한숨을 내쉬며 쿠로코는 핸드폰의 키보드를 꾹꾹 눌렀다.
[From. 쿠로코군
좋은 생각이라뇨?]
[From. 타카오군
오늘 할로윈이잖아!]
쿠로코의 답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가 전송버튼을 누름과 거의 동시에 답장이 날아왔다. 할로윈이라.. 생각해보니 반 여자아이들이 오늘 분장 어떻게 할것인지 물어보는 대화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쿠로코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 문자에 대한 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기나긴 고민 끝에 결국 쿠로코는 간결한 문장을 하나 적어 답장을 보냈다.
[From. 쿠로코군
아. 그런가요?]
쿠로코의 무성의한 답장을 받은 타카오는 찔끔 눈물이 나올뻔 했다. 신짱이었더라도 이렇게까지 귀찮음이 들어나게 문자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서운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타카오는 쿠로코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From. 타카오군
뭐야, 그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아무튼! 모처럼 할로윈이니까 지금까지 우리 속 썩이던 키세키들 한번 골탕 먹이는 거 어때??]
무슨 초등학생쯤 되는 어린애도 아니고 골탕 먹이기라니. 게다가 그 대상이 기적의 세대라니. 무엇인가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쿠로코는 타카오에게 답장을 보냈다.
[From. 쿠로코군
키세키들이라면....기적의 세대분들을 얘기하시는겁니까.]
[From. 타카오군
그런거지! 이름하여 그림자들의 반란!!]
그림자들의 반란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벌써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쿠로코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빠르게 타자를 눌러 그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From. 쿠로코군
그런 이상한 모임에 참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빼주시죠.]
[From. 타카오군
아이~그러지 말고. 솔직히 생각해봐. 날 이길 수 있는건 자기뿐이라며 네 속을 왕창 썩인 아오미네상한테 합법적으로! 장난을 칠 수 있는거라고?! 하고 싶지 않아?]
문자에 적혀있는 누군가의 이름에 쿠로코의 눈이 흔들렸다. 솔직히 쿠로코가 그 때문에 왕창 속 썩였던 것을 생각하면 두들겨 패주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그를, 합법적으로 괴롭힌다?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란 것은 분명했다.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려던 쿠로코는 곧 무엇인가를 깨닫고 살짝 텐션이 가라앉은 상태로 타카오에게 문자를 보냈다.
[From. 쿠로코군
그래봤자 할로윈은 사탕을 주면 괴롭히면 안 되는거 아닙니까? 사탕을 가지고 있으면 어쩌려고요.]
[From. 타카오군
그러니까 우리는 Trick or Treat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Trick yet Treat!라고 외치면서 달려드는거야 어때?]
[From. 쿠로코군
사탕 따윈 필요 없고 장난만 치겠다. 이거군요.]
[From. 타카오군
맞아! 그래서 휘리릭 정신없게 장난치고 빠져나오자고.]
[From. 쿠로코군
만약.]
쿠로코가 보낸 짧디 짧은 문자를 보며 타카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키세키 전부와 알고 지내는 그가 참여하기 싫다고 키세키를 전부 골탕 먹이기는커녕 한명도 골탕 먹이기 힘들 것이다.
[From. 타카오군
만약?]
[From. 쿠로코군
만약 아오미네군이 장난의 첫 타겟이라면 참여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솔직한 그의 문자에 타카오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체육관 한구석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타카오를 보며 미도리마는 인상을 썼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미도리마가 자기를 쳐다보던 말던 타카오는 신경쓰지 않고 문자에 열심히 ‘ㅋ’을 찍어냈다.
[From. 타카오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럴 줄 알았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럼 우린 일단 동맹 맺은 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rom. 쿠로코군
그렇다하더라도 우리 둘뿐이면 전부 골탕먹이기엔 인원이 너무 적네요. 아카시군이나 무라사키바라군은 여기서 꽤 먼 곳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From. 타카오군
그러니!! 우리와 똑같은 카게! 그림자인! 그를 부르는거지!]
[From. 쿠로코군
그요?]
[From. 타카오군
마유즈미상!]
예상치 못한 이름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쿠로코의 손이 크게 떨렸다. 하마타면 핸드폰을 떨어트릴뻔 했다고 생각하며 쿠로코는 타카오에게 질문했다. 분명 두 학교가 시합을 붙긴 했었지만 그때의 마유즈미상은 쿠로코와의 대결 전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았었다. 저와 같이 존재감이 옅은 사람이라 보통은 못보고 지나치기 마련인데 메일을 보낼 수 있을정도의 사이가 되다니? 궁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일단은 핵심만 추려 타카오에게 문자를 보냈다.
[From. 쿠로코군
....마유즈미상의 메일은 어떻게 아신겁니까? 둘이 친해요?]
[From. 타카오군
아니, 친한 건 아닌데.. 그냥 아카시상이 알려주던데?]
본인이 직접 알려준게 아니라면 연락하는 건 실례인거 아닐까라는 생각 이전에 쿠로코의 머릿속은 타카오가 아카시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로 가득 찼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넉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From. 쿠로코군
타카오군.. 아카시군에게도 말을 걸었던 것입니까?]
[From. 타카오군
그럼 그럼! 어짜피 3년동안 볼텐데 친해지면 좋잖아? 아무튼 마유즈미상에게 내가 물어볼게.]
그 문자를 보낸 후 타카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어찌하다보니 알게 된 그의 번호이지만 그는 자신을 모를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를 이 작전에 끌어들일수 있을지 고민하며 문자를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던 타카오는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 문자를 작성했다.
[From. ???
마유즈미상! 저희랑 함께 하지 않을래요?!!?]
징 하고 울리는 핸드폰을 본 마유즈미는 그대로 핸드폰을 꺼버릴까 하다가 문자에 자신의 이름이 써 있는 것을 보곤 의아함을 느끼며 그 메일로 답장을 보냈다.
[From. 마유즈미상
너 누구]
누가 쿨시크한 남자 아니랄까봐 문장부호조차 없는 문자에서부터 묻어나는 그의 귀찮음에 타카오의 마음이 살짝 불안해졌다. 타카오는 좋은 머리를 풀가동 시키며 이 귀차니즘에 파묻힌 사람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고민했다.
[From. ???
저 타카오에요. 슈도쿠의 타카오 카즈나리.]
[From. 마유즈미상
차단한다.]
[From. ???
악!!!아앗!!! 안돼요, 마유즈미상!!!! 진짜 진짜 중요한 일이란 말입니다!!! 마유즈미상이 없으면 전부 물거품이 되버릴거라구요!!]
자신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문자에 대충 대답하며 읽고 있었던 책을 내려놓았다. 왜 자신이 꼭 필요하단건진 모르겠지만 들어보기나 하자란 마음으로 우선 타카오의 메일을 핸드폰에 저장하고 그에게 물었다.
[From. 마유즈미상
뭔데]
[From. 타카오 카즈나리
키세키 엿먹이기요!]
[From. 마유즈미상
너 돌았냐?]
[From. 타카오 카즈나리
아닌데요! 정상인데요?]
[From. 마유즈미상
....야. 우리 학교에 있는 키세키는 누구지?]
[From. 타카오 카즈나리
그거야 아카시상이죠!]
[From. 마유즈미상
그걸 알면서 나보고 그걸 참여하라고? 뒷감당이 안 될게 뻔하잖아.]
[From. 타카오 카즈나리
괜찮아요! 그 점은! 과거에 같은 학교였던 쿠로코군이 어떻게든 해결해줄겁니다!]
[From. 마유즈미상
하? 그녀석도 한데? 그런거에 흥미 보일만한 녀석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자신과 상당히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쿠로코의 얘기를 꺼내자 역시나 타카오의 생각대로 마유즈미는 그의 제안에 아까보다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From. 타카오 카즈나리
어때요!!두 분은 저보다 더 철저히 그림자 역을 맡았으니까 쌓인 게 더 많지 않을까요? 같이 키세키를 골려봅시다. 중학교때 몫까지 전부 합쳐서요!!]
타카오의 문자를 본 마유즈미는 고민에 잠겼다. 하긴 잘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쌓인 게 정말 많았다. 특히 지금의 아카시가 되기 전, 세이린과의 경기에서 그를 사용한 아카시에겐 쌓인 것이 하루 온종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마유즈미는 타카오에게 답장을 보냈다.
[From. 마유즈미상
에휴..그래. 할게]
[From. 타카오 카즈나리
마유즈미상, 카톡 하시죠?]
[From. 마유즈미상
아니 안하는데]
[From. 타카오 카즈나리
으어...그럼 라인은요?]
[From. 마유즈미상
그것도 안해]
요즘 세상에 카톡도 라인도 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타카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간절히 물었다.
[From. 타카오 카즈나리
하나라도 가입해주시면 안돼요?]
[From. 마유즈미상
귀찮아]
역시나 한마디로 매몰차게 거절하는 마유즈미의 문자를 보며 타카오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 방법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타카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타카오는 마유즈미를 한방에 움직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빼들었다.
[From. 타카오 카즈나리
으으..아! 트위터 하시죠!]
[From. 마유즈미상
너그거어떻게알았어]
어찌나 급하게 문자를 보냈는지 띄어쓰기조차 하지 않은 그의 문자를 보며 타카오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역시 자신의 눈은 쓸모가 많다고 생각하면서 태연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From. 타카오 카즈나리
아니, 전에 핸드폰 빤히 보고 있을 때 보고 알았죠. 저 이래봬도 호크아이라구요? 그럼 이렇게 하죠. 트위터 채팅창으로 대화하면 되겠네요.]
[From. 마유즈미상
안돼절대안돼다차단해버릴거야.]
멘탈이 파스스 사라지는게 느껴지는 마유즈미의 문자를 보며 타카오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From. 타카오 카즈나리
그렇지만 안 그러면 셋 다 한 번에 말할 수 있는 연락 수단이.. 선배가 싫으시다는데 저희가 트위터에 가입해야죠. 선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시킬 수는 없잖아요?]
[From. 마유즈미상
카톡 가입할게]
그 문자를 본 타카오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자기 자신과 쿠로코, 마유즈미가 포함된 카톡방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자들의 반란이란 채팅방이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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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키들 골려먹는 그림자조가 보고싶었는데 이 글을 쓰다가 노트북 액정이 깨져버렸습니다.. 키세키의 저주를 받았어요ㅠㅠㅠ흑흐흑....
사실 할로윈날 한명씩 골탕먹이는거 다 써서 올리고 싶었는데 곰손이라 무리였네요ㅠㅠ
피드백은 항상 환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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